본문 바로가기

Field Trip

일기

우여곡절끝에 이사가 끝났다.

이번 이사는 매우 고난이도였다.

전세금을 끌어다가 쓸 곳이 생겨 월세 방을 구해 이사하기로 했는데,

임대인이 이사(잔금일)하루 전날 '계약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소식을 들은 나는 얼른 새 방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원래 계약한 방에 입주하지 못하게 될 경우 대신 이사할 공실을 몇개 봐두기로 했다.

그리고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혔으니 계약금의 2배와 이사비, 입주청소비, 공인중개비를 물어달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사 하루전 계약 해지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임대인은 내가 보상해달라고 한 금액을 용납하지 못했다.

결국 직접 통화한 후에야 납득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금액을 내기 아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계약 해지 의사를 없던일로 하자고 했다. 더 나아가 '계약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계약 해지 의사가 아니라 재고해보자는 이야기라고 했다.

결국 임대인은 사과의 의미로 내게 입주청소 비용을 대신 지불해주기로 하였다.

이사 첫날부터 너무너무 찜찜했지만 ...

 

이사 당일에는 눈이 내렸다. 그것도 해가 뜬 채로..

옛부터 이사 당일에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좋은일이 생기거나 부자가 된다고 했다.

내가 월세로 이사가는 이유도 나름의 재정적인 계획 때문이었다.

속설처럼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자가 되면, 나를 침해받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침해받지 않고 온전한 사랑을 하며(모순적이지만) 살고 싶다.

 

오늘은 이전 그룹장님과 미루고 미뤄왔던 면담을 했다. 이제는 그룹장이 아니지만 그룹장이라고 쓰겠다.

면담의 시작은 지난 술자리에서였다. 그룹장님이랑 술에 쩔어서 대화를 하다가..

 

'그룹장님 저는 저만의 집을 짓고 싶어요.

제가 하는 일이 모여서 결국에는 어떤 집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러려면 견고한 설계 도면도 있어야 하고요,

많은 집들을 봐야해요.

그러고 나서는 화장실도 지어보고

다음에는 부엌,

거실, 안방 ...'

 

술에 취해서 말씀 드린 거였지만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이었다.

집에 비유를 하게 된 계기는 내가 그룹을 이동하면서였다.

작년에 나는 검증그룹에서 설계 그룹으로 전배를 갔다.

검증에서 했던일이 화장실이었다면 나는 화장실만 백년 천년 지을수도 있지만,

다음에 설계 그룹으로 이동해서 부엌도 지어볼 수 있는 것이다.

검증에서 설계로 갔다고 해서 내가 전혀 다른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집을 짓기 위해 다른 부분들을 탐구하고 연결하는 과정을 거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룹장님은 오늘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당장 집을 짓는것이 아니라,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집을 많이 접하기 위해 임장을 다니는 시기라고.

부서 내에서 다른 사람들의 코드를 보며, 이 집의 벽지는 어떻고, 인테리어는 어떻고, 건축 자재는 어떤것을 썼으며...

이런 경험들이 모여 나의 일부가 되었을 때, 그때는 설계 도면을 그려야할 때라고 하셨다.

 

또한 내가.. 그때 그 술자리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의 숙명.. 한비트 한비트 디버깅하는 과정이 다소 지루하고 힘들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룹장님과의 대화 후 그런 시간들이 결국 나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의 그룹장님도 그런 시기를 거쳐오셨으니...  RTL 디버깅에 대한 한탄은 너무 나의 어리광 같아서 크게 할 말이 없다.. ㅎㅎ ( 근데 진짜 짜증나긴 한다.. c나 python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디버깅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프로세스가 시퀀셜하지 않다.) 

 

그리고 도움이 되었던 그룹장님의 조언.

나만의 런드리 리스트를 만들기.

일이 바쁠 때에 '이 바쁜 일이 끝나면 이런 저런 것들을 해둬야지'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막상 바쁜 일이 끝나면 그 일들을 까먹거나 소홀히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룹장님은 그런 일들로 런드리 리스트를 작성한 다음 과제가 끝나고 실행에 옮기셨다고 하셨다.

정말 정말 도움이 될 조언이었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바쁜 일이 몰아치면 그 흐름이 끊겨 결국 하던 공부도, 작업도 저 멀리 던져버리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 해야할 공부들을 런드리 리스트로 작성하자.

그리고 나의 성장을 위한 런드리 리스트 뿐만 아니라 조직에 도움이 될 만한 리스트도 작성을 해보자..

 

 나는 고과나 돈처럼 1차적인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좀더 높은 목적의식을 갖고 일하는 엔지니어가 되고싶다.

(물론 돈을 겁~~~나 좋아하지만, 돈에 대한 추구는 직장 밖에서 하려고 한다. 회사에서 받는 돈은 정기적인 수입과 재정적인 안정성을 주는 수단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모듈 디자인도 잘 해보고

IP와 SoC 관점에서의 설계도 볼 줄 알며

소프트웨어 스킬(프로그래밍)과 소프트웨어 워크(host, firmware)도 잘 알고

영어도 잘하고 작문에도 소질 있고 의사 소통 능력도 뛰어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위해서?

그건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인정인지

나의 자아 실현을 위해서인지

 

 

 

'Field Tri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이버 블챌보다 어려운 티스토리 블챌  (4) 2024.11.08
2024 ARM Tech Symposia 를 다녀와서  (3) 2024.11.02